설레는 마음으로 들어온 새집의 배신
이사 온 지 정확히 3주가 지났을 때였다. 흔히 말하는 ‘새집 증후군’ 같은 것보다 더 실질적이고 짜증 나는 문제가 터질 줄은 몰랐다. 처음에는 화장실 바닥 배수구에서 물이 아주 느릿하게 빠지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좀 꼈나 싶어 플라스틱 거름망을 들춰봤는데, 예상했던 머리카락 뭉치가 아니라 뭔가 거뭇거뭇하고 딱딱한 돌덩이 같은 것들이 보였다. 손가락을 넣어 살짝 건드려보니 이게 물에 녹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이사 오기 전 인테리어를 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공사하다 남은 시멘트 조각이나 타일 부스러기가 배관 안으로 들어간 게 아닌가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뚫어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답답함
결국 집 근처 편의점에서 흔히 파는 액체형 배수구 세정제를 사 왔다. 5천 원인가 6천 원인가 했는데, 광고에서는 붓기만 하면 뻥 뚫린다고 해서 믿고 썼다. 한 통을 다 붓고 30분을 기다렸다. 뜨거운 물을 콸콸 들이부었는데, 물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었다. 오히려 거품만 잔뜩 일어 올라와서 욕실 바닥이 미끌거리고 난리가 났다. 이게 단순히 막힌 게 아니라 배관 깊숙한 곳에서 물리적으로 무언가 걸려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이소에서 산 2천 원짜리 긴 철사 도구도 넣어봤지만, 끝에 닿는 느낌이 뭔가 묵직한 이물질이 걸린 듯한 둔탁한 감촉뿐이었다. 그 순간부터는 정말 기운이 쫙 빠졌다.
집주인과의 피곤한 실랑이
결국 참지 못하고 집주인에게 연락을 했다. 부동산 계약할 때만 해도 웃으며 ‘새로 싹 고쳐놨으니 걱정 마시라’던 분이, 막상 하수구 사진을 찍어 보내니 반응이 영 뜨뜻미지근했다. ‘평소에 관리를 어떻게 하셨길래 그러냐’는 식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게 내가 산 것도 아니고 이사 온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도대체 어떤 관리를 해야 한단 말인가. 관리소장님을 불러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배관 내시경 장비가 있는 전문 업체가 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비용 문제로 한참을 실랑이했다. 결국 내가 먼저 사람을 부르고 영수증을 처리하는 방식으로 타협했는데, 그 과정에서 소모된 에너지가 훨씬 컸다.
결국 부른 전문가와 배관 속의 정체
전문 업체 기사님이 오시는 데까지 3일이 걸렸다. 그동안 나는 화장실 물을 쓸 때마다 극도로 예민해졌다. 기사님이 가져온 배관 내시경 장비를 보니 내 속이 다 시원해지는 것 같았다. 모니터 화면으로 본 배관 안은 가관이었다. 짐작했던 대로 큼지막한 백시멘트 덩어리와 공사 현장에서나 나올 법한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엉켜 있었다. 작업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는데, 그동안 내가 낑낑대며 고생했던 시간들이 허망해지는 순간이었다. 수리 비용은 15만 원 정도가 나왔다. 물론 그 돈은 나중에 정산받았지만, 내 주말 하루를 온전히 날려버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찝찝함은 왜 가시지 않는 걸까
공사를 다 끝내고 배수구가 시원하게 내려가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찜찜하다. 혹시 다른 배관에도 이런 공사 쓰레기가 남아있는 건 아닐까? 주방 하수구도 가끔 물이 찰랑거리는 것 같고, 화장실 나방파리가 한두 마리씩 보이는 것 같다. 전에는 그냥 ‘새집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이제는 모든 게 다 배관 문제처럼 보인다. 얼마 전에는 아랫집에서 누수 흔적에 대해 물어보러 올라왔을 때 심장이 덜컥 내려앉기도 했다. 집이라는 게 참, 겉으로 보이는 인테리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의 마감이 진짜라는 걸 이번에 톡톡히 배웠다. 다음번에 또 이사를 하게 된다면, 그때는 계약서에 배관 상태까지 다 확인하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게 된다. 물론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답답하시겠어요. 새집에서 바로 이런 문제가 생기면 더 속상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