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발목까지 차오른 세탁실 물
지난주 일요일 오후였나, 빨래를 돌려놓고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세탁실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꿀렁거리는 소리라고 해야 하나. 처음에는 세탁기가 탈수를 하면서 흔들리나 싶었는데, 막상 나가보니 세탁실 바닥이 이미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당황해서 세탁기 전원부터 껐는데도 물은 멈추지 않고 배수구에서 계속 뿜어져 나왔다. 이게 말로만 듣던 역류라는 건가 싶어 머릿속이 하얘졌다. 3년 전쯤에 세탁기 트랩을 따로 설치했었는데, 그때 다 해결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나 보다.
아랫집으로 샐까 봐 든 생각
제일 먼저 걱정된 건 당연히 아랫집이었다. 우리 집 세탁실에서 나간 물이 아랫집 천장으로 타고 내려가면 어쩌나 싶어서 대걸레랑 수건을 다 꺼내서 물길을 막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이 갈색 빛을 띠고 냄새도 퀴퀴해서 이게 단순한 세탁기 물이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더니 일요일이라 그런지 배관 업체 연락처만 툭 던져주더라. 부르는 게 값이라던데, 일단 사람이 급하니 어쩔 수 없었다.
업체를 불러도 고민은 남는다
동네에서 배관 청소를 한다는 업체를 불렀는데, 15만 원 정도 비용이 들었다. 기사님이 오셔서 우수관 쪽 문제라고 하시더라. 아파트 자체가 오래되다 보니 공용 배관에 이물질이 쌓여서 그런 거라는데, 이게 나 혼자 조심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게 좀 허탈했다. 기사님은 고압 세척을 하면 확실하겠지만 비용이 몇십만 원 단위로 올라간다고 하셨다. 당장 눈앞의 물난리는 막았지만, 또 언제 이런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시질 않는다.
구청 지원 사업은 알아봤지만
나중에 찾아보니 영등포구 같은 곳에서는 지하나 반지하 세대에 역류 방지기나 물막이판을 무상으로 설치해 준다고 하더라. 근데 나는 꽤 높은 층에 사는데도 이런 일이 생기니 제도적인 도움을 받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애초에 설계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괜히 애꿎은 세탁기 트랩만 탓하게 된다. 다음번에 또 물이 올라오면 그때는 공용 배관 문제로 관리사무소에 강력하게 따져야 할 것 같은데, 막상 또 닥치면 나만 손해 보는 기분일까 봐 망설여진다. 결국 문제는 해결된 듯하면서도 찝찝하게 남았다. 배관 속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며칠간은 세탁기 돌릴 때마다 세탁실 문을 열어놓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