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전혀 빠지지 않고 역류하기 시작한 주방 싱크대 상황
평소보다 물 빠지는 속도가 조금 더디다고 느끼긴 했었는데, 설마 아파트싱크대막힘이 나한테 실제로 일어날 줄은 몰랐다. 저녁 설거지를 하려고 물을 틀었는데, 1분도 안 돼서 싱크볼에 물이 차오르더니 거품이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보통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내려가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십 분이 지나도 수위가 그대로였다. 배수구망을 들어내고 안쪽을 들여다보니 거뭇한 물때와 기름 찌꺼기 냄새가 확 올라왔다. 싱크대 밑 걸레받이를 열어서 바닥 배관 쪽을 살펴보니, 씽크대배수관 연결 부위 틈새로 미세하게 물이 배어 나오는 게 보였다. 덜컥 겁이 났다. 아래층 천장으로 누수라도 되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일단 락스를 부어볼까 하다가, 단단하게 굳은 기름때에는 소용없다는 글이 떠올랐다. 급한 대로 동네 편의점과 마트를 뒤져서 화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마트에서 사온 액체 배관클리너를 붓고 두 시간을 기다려보았다
동네 대형마트 세제 코너에 가니 여러 종류의 제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홈스타 배관클리너 제품이 눈에 띄어 약 4,500원 정도를 주고 한 병을 사 들고 왔다. 설명서에는 배수구에 붓고 한두 시간 후에 뜨거운 물을 흘려보내라고 적혀 있었다. 곧바로 싱크대 배수구 구멍에 조심스럽게 용액을 들이부었다. 걸쭉한 파란색 액체가 들어가면서 특유의 락스 비슷한 매캐한 냄새가 주방 가득 퍼졌다. 냄새가 꽤 독해서 베란다 창문과 거실 창문을 모두 열어두고 환풍기까지 돌려야 했다. 설명서에 적힌 대로 정확히 두 시간을 기다렸다. 타이머가 울리고 나서 포트에 끓인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어보았는데, 쿨럭거리는 소리만 날 뿐 물이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고 다시 차올랐다. 배관 깊숙한 곳에서 단단하게 굳어버린 삼겹살 기름 같은 것들에는 이 정도 액체 세제로는 기별도 안 가는 모양이었다.
싱크대 하부장 안쪽 보일러 분배기 틈새로 손을 집어넣어 작업하기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싱크대 아래쪽 문을 열고 본격적으로 바닥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집 아파트 싱크대 밑은 유독 좁은 데다가 보일러 온수 분배기 파이프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몸을 제대로 밀어 넣기조차 힘들었다. 씽크대배수관 주름관이 바닥 하수관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아내야 했는데, 좁고 어두운 틈새로 손을 집어넣느라 팔뚝에 긁힌 상처가 몇 개나 생겼다. 휴대폰 플래시를 비춰가며 겨우 주름관을 잡아당겨 뽑아냈더니, 관 끝부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색 진흙 같은 찌꺼기들이 잔뜩 묻어 있었다. 냄새가 정말 고약했다. 이 좁은 틈에서 혼자 낑낑거리며 고무장갑을 끼고 썩은 기름 덩어리들을 걷어내고 있으니 내가 왜 진작에 기름진 음식을 먹고 싱크대에 그냥 뜨거운 물과 함께 흘려보냈는지 후회가 밀려왔다.
철물점에서 사온 수동 스프링 관통기와 액체 세제의 성능 차이
하수구 전문 업체를 부를까 고민하며 전화를 걸어보니 간단한 작업도 기본 150,000원부터 시작하고 상황에 따라 비용이 더 추가된다고 했다. 주말이라 당장 오기도 힘들다고 해서 결국 근처 철물점으로 달려갔다. 철물점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5미터짜리 수동 스프링 관통기를 8,000원에 사 왔다. 액체 배관클리너는 화학적으로 단백질이나 약한 기름을 녹이는 데는 유용하겠지만, 이렇게 배관 내부가 꽉 막힌 상황에서는 물리적인 도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스프링 끝부분을 하수구 구멍 안으로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약 1.5미터쯤 들어가자 무언가 턱 걸리는 묵직한 느낌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손잡이를 잡고 시계 방향으로 뱅글뱅글 돌리면서 안쪽으로 더 밀어 넣으려고 힘을 주었다. 넣었다 뺐다를 몇 번 반복하자 쇠 스프링 끝에 찐득한 이물질이 걸려 나오기 시작했다.
굳어있던 노란 기름 덩어리가 뜯겨 나오며 일단 물은 내려가기 시작했다
스프링 관통기를 서너 번 더 쑤시고 잡아당기는 과정을 반복하자, 마침내 주먹만 한 크기의 노랗고 단단하게 굳은 유지방 덩어리들이 쪼개져서 튀어나왔다. 그걸 보는 순간 쾌감보다는 징그럽고 냄새가 너무 심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대충 신문지 위에 덩어리들을 건져내고, 다시 하부장 주름관을 바닥 하수관에 꽂았다. 그리고 싱크대에 물을 가득 받아서 한 번에 내려보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콰아아’ 하는 시원한 소리와 함께 물이 소용돌이치며 빠져나갔다. 바닥 연결 부위에서 물이 넘쳐 흐르지 않는지도 한참을 쳐다보았다.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었다. 하지만 주방 바닥 타일 틈새로 튀어버린 하수구 오물들을 닦아내는 뒷정리 작업이 정말 지옥 같았다. 락스를 물에 타서 바닥을 몇 번이고 닦아내도 코끝에 맴도는 비린내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완전한 해결인지 일시적인 방편인지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 이유
비용을 아끼겠다고 주말 반나절을 다 바쳐서 몸고생을 하긴 했지만, 이게 정말 완전히 해결된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스프링 관통기로 길만 살짝 뚫어놓은 것뿐이라, 배관 벽면에 붙어있는 오래된 스케일들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 뻔하다. 아파트배관청소를 주기적으로 전문 장비로 고압 세척을 해야 한다는 이웃의 말이 떠올라 마음이 복잡하다. 조만간 또 싱크대에 물이 차오르면 그땐 정말 내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람을 불러야 할 것 같다. 요즘은 설거지를 할 때마다 기름기가 조금이라도 묻은 그릇은 키친타월로 몇 번씩 닦아내고 뜨거운 물을 오랫동안 틀어놓는 버릇이 생겼다. 한 번 겪고 나니 싱크대 물 내려가는 소리가 조금만 이상해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 귀찮은 짓을 조만간 또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찝찝한 기분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정말 끔찍하네요. 삼겹살 기름 덩어리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저도 비슷한 경험 한 적 있어요. 오래된 집에서 싱크대 배수구 막힘을 해결하려다, 낡은 칫솔로 계속 긁다 보니 손목이 많이 아팠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