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세탁기 고장인 줄 알았다
지난주 수요일이었나, 세탁기를 돌려놓고 거실에서 TV를 보는데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렸다. 베란다 쪽으로 나가보니 세탁기 바로 옆 배수구에서 정체불명의 거품 섞인 물이 찰랑거리면서 차오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스포크 세탁기를 새로 바꾼 지 얼마 안 돼서 설정을 잘못했나 싶었다. 아니면 세제 양을 너무 많이 넣었나 싶어 며칠 동안은 세제 양도 줄여보고, 헹굼 횟수도 늘려봤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빨래가 문제가 아니라 아예 집 전체 배수관이 어디선가 꽉 막힌 느낌이었다.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했더니 자기들은 공용 배관 쪽은 건드릴 수 없으니 전문 업체를 부르는 게 빠를 거라고 딱 잘라 말하는데, 그때부터 참 막막해졌다.
하수구 내시경까지 동원될 줄이야
결국 유튜브에서 유명하다는 하수구 업체 몇 군데를 찾아봤다. 비용이 15만 원에서 30만 원 사이라는데, 정확한 금액은 현장에 와봐야 안다고 해서 좀 찜찜했다. 그래도 역류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불렀다. 기사님이 오시자마자 한 말이 ‘이거는 단순 막힘이 아니라 횡주관 문제일 확률이 높아요’였다. 뭔지도 모르는 전문 용어를 듣고 있으니 더 불안해졌다. 긴 쇠막대 같은 걸 넣어서 쑤시는데도 반응이 없어서 결국 하수구 내시경 장비라는 걸 가져왔다. 모니터 화면을 같이 보는데, 배관 속에 하얀 기름 덩어리들이 떡처럼 붙어 있는 게 보였다. 10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배관 청소를 안 했으니 당연한 결과인가 싶기도 했다.
다가구인지 아파트인지에 따라 복잡해지는 공사
기사님이 작업하면서 덧붙이길, 이게 단순히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 배관 문제면 아래층이나 위층이랑 엮여서 공사가 커질 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 집 세탁실 배관 라인 내의 문제라 다행이었지, 이게 만약 윗집에서 물을 쓸 때마다 우리 집으로 역류하는 거였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30분 정도 스프링 장비를 돌리고 나서야 거품이 쑥 내려갔다. 속이 다 시원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언제 또 막힐지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함이 가시질 않았다. 비용은 대략 20만 원 중반대로 해결했는데, 이게 싼 건지 비싼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냥 뚫렸다는 것에 안도할 뿐이다.
배수구 청소는 정말 끝이 없다
작업이 끝나고 나니 배관 찌꺼기 냄새가 베란다에 가득 차서 한 시간 넘게 문을 열어두어야 했다. 기사님은 평소에 세탁조 청소도 중요하지만, 배수구 쪽에 이물질이 끼지 않게 주기적으로 뜨거운 물을 부어주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일상생활하다 보면 세탁기 필터 청소하는 것도 잊어버리기 일쑤인데, 배관까지 신경 쓰는 게 쉽나 싶다. 세탁기 돌릴 때마다 거실까지 꿉꿉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아 요즘은 예민하게 굴고 있다. 사실 공사를 다 끝냈는데도 여전히 배수 소리가 예전보다 둔탁하게 들리는 것 같아 찜찜한 기분이 남았다. 이게 진짜 완벽하게 뚫린 건지, 아니면 또 조만간 누군가를 불러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관리의 끝은 어디인가
어쨌든 당장 물은 내려가니까 일단락된 건데, 며칠 동안 세탁기를 못 돌려서 쌓인 빨래더미를 보며 한숨만 나왔다. 누군가는 세입자 책임이다, 임대인 책임이다 말이 많던데 다행히 나는 자가라서 그런 복잡한 문제는 피했다. 하지만 내 돈 들여서 뚫고 나니, 내 집 관리하는 게 이렇게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나 싶다. 어제는 윗집에서 세탁기를 돌리는 소리가 들리길래 또 역류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베란다 문을 빼꼼히 열어보고 확인하는 버릇까지 생겼다. 고쳐놓고도 걱정하는 내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