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세탁기 밑 배수구 철판 하나 맞추려다 하루를 다 보냈다

어쩌다 하수구 위를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나

며칠 전 세탁기를 옮기다가 하수구 배수구 구멍이 너무 훤히 뚫려 있는 걸 보고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세탁기 받침대 높이를 좀 높였더니 그 사이로 먼지도 들어가고 무엇보다 뭔가 빠뜨릴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처음에는 그냥 인터넷에서 적당한 철판 덮개를 사서 깔면 끝날 줄 알았다. 시중에 파는 기성품들이 꽤 많으니까. 그런데 세탁기 다리 위치랑 배수구 위치가 묘하게 겹쳐서 기성품으로는 도저히 각이 안 나왔다. 그래서 결국 직접 스텐 가공을 맡겨서 철판을 맞춰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도면이라곤 종이에 그린 낙서뿐

문제는 내가 설계 같은 건 전혀 모른다는 거다. 스텐 가공 업체에 전화를 몇 군데 돌려봤는데 다들 하나같이 도면을 보내달라고 했다. 전문적인 캐드 파일이 필요한 건지 물어보니 그냥 치수만 정확히 적어서 보내면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줄자를 들고 세탁기 아래를 기어들어가 실측을 했다. 이 과정이 진짜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세탁기가 무거워서 혼자 밀기도 힘들고, 바닥은 왜 이렇게 습한지 모를 일이다. 대충 종이에 가로 세로 치수랑 배수구 위치를 점으로 찍어서 그려 보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게 정말 제작이 될까 싶을 정도로 조악한 수준이었다.

생각보다 비싼 견적과 자재값의 괴리

생각했던 비용은 대략 3만 원에서 5만 원 사이였는데, 견적은 꽤 다르게 나왔다. 자재로 SUS304를 쓸지 SUS630을 쓸지 물어보는데 나는 그냥 녹 안 슬고 튼튼하면 된다고 했더니 SUS304면 충분하다고 했다. 그런데 철판 레이저 가공하고 절곡까지 들어가는 비용이 생각보다 꽤 됐다. 10만 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듣고 나니 이걸 꼭 이렇게까지 해서 막아야 하나 싶은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하수구 위를 막는 건데 뭐 대단한 산업용 장비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냥 대충 나무 판자를 댈까 싶다가도 욕실 근처라 금방 썩을 것 같아 포기했다.

로봇용접과 보링까지 필요한 일인가

업체 사장님이랑 통화를 하는데 무슨 로봇용접이니 V컷팅이니 하는 용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냥 구멍 뚫린 판 하나 달라는 건데 왜 이렇게 복잡하게 돌아가는 건지 답답했다. 어떤 업체는 보링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했다. 배수구 캡이 튀어나와 있어서 그 부분을 정밀하게 파내야 한다는 뜻인 것 같았다. 사실 그냥 좀 덜렁거리게 설치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전문가들은 그렇게 작업을 하면 나중에 물이 고이거나 철판이 휠 수 있다고 했다. 니켈 시세가 올랐다는 둥 자재 수급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더 이상 따지기도 귀찮아졌다.

결국 설치는 했지만 왠지 모를 찜찜함

2주 정도 기다려서 택배로 철판을 받았다. 받아보니 묵직했다. 생각보다 너무 튼튼하게 만들어져서 오히려 이게 과한 게 아닌가 싶었다. 막상 설치를 해보니 세탁기 다리 밑으로 딱 맞아떨어지는 쾌감은 잠시였다. 설치하고 나니 오히려 그 주변 하수구 냄새가 더 잘 올라오는 것 같기도 하고, 정기적으로 청소를 하려면 다시 이걸 들어내야 하는데 그게 여간 무거운 게 아니다. 분명히 내가 원해서 주문한 건데 왜 이렇게 한숨이 나는지 모르겠다. 그냥 좀 더 얇고 가벼운 알루미늄 판으로 할 걸 그랬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처음부터 하수구 덮개 기성품이 맞는 자리를 찾았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확실한 건, 다음번에는 이런 식으로 직접 치수를 재서 주문 제작하는 일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는 거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고생을 했나 싶은 마음만 남았다.

“세탁기 밑 배수구 철판 하나 맞추려다 하루를 다 보냈다”에 대한 3개의 생각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