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대에서 갑자기 물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저녁에 설거지를 하다가 평소랑 다르게 물이 정말 안 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냥 단순히 음식물 찌꺼기가 좀 쌓였나 싶어서 평소 쓰던 뚫어뻥 같은 약품을 들이부었는데, 이게 화근이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갑자기 싱크대 아래쪽 주름관 사이로 갈색 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닥에 깔아둔 매트가 다 젖고 냄새가 올라오는데,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더라. 아파트 관리실에 전화해보니 주말이라 당직 기사님만 계시는데 이쪽은 전문 장비가 없어서 해결이 어렵다고 하셨다. 어쩔 수 없이 밤중에 인터넷을 뒤져서 ‘긴급 통수’라고 적힌 곳에 전화를 돌렸다.
10미터 배관길이라는 생소한 이야기
새벽 1시쯤 도착하신 기사님이 배관을 보시더니 대뜸 ‘여기는 꺾이는 부분이 많아서 일반 스프링으로만은 안 된다’고 하셨다. 나는 그냥 기름때 좀 끼었겠거니 했는데, 배관 내시경이라는 걸 넣어서 화면을 보여주는데 정말 가관이었다. 거의 10미터 가까이 배관이 기름 슬러지로 꽉 차 있었다. 아파트 1층인데 왜 이렇게 길게 연결되어 있냐고 물어보니, 이쪽 라인이 다 모여서 나가는 구조라 그렇단다. 10미터라는 숫자가 너무 생소해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긴 했는데, 그 길이만큼 작업비가 올라간다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기본 출장비에 통수 작업비까지 해서 25만 원 정도를 불렀는데, 당장 물이 차오르는 상황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왜 커피 가루를 싱크대에 버리면 안 되는지
기사님이 작업하시면서 보여주신 내시경 화면에는 커피 찌꺼기가 기름이랑 뒤엉켜서 거의 콘크리트처럼 굳어있었다. 평소에 커피를 좋아해서 습관적으로 싱크대에 버렸는데, 그게 배관 안에서 기름과 만나면 최악의 조합이 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기사님 말씀이 이게 한번 굳으면 고압 세척기 없이는 일반적인 통수 장비로는 뚫기가 힘들다고 하셨다. 보통 단순 통수만 하면 10만 원 안팎인데, 고압 세척까지 들어가면 30만 원을 훌쩍 넘긴다고 하니 진짜 덜컥 겁이 났다. 결국 그날은 겨우 물길만 터놓는 수준으로 작업을 마쳤는데, 완벽하게 다 뚫린 건지 내내 찜찜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작업이 끝나고 남은 찝찝한 흔적들
새벽 3시가 넘어서 작업이 끝났다. 바닥에 튄 오물들을 대충 닦아내긴 했는데, 냄새가 완전히 안 빠져서 밤새 환풍기를 돌려놓고 잠을 설쳤다. 고생하신 건 알겠는데, 작업을 하고 나니 싱크대 아래쪽 주름관 상태가 영 불안하다. 기사님은 나중에 배관 전체 교체를 한번 고려해보라고 하셨다. 이 건물이 지어진 지 15년이 넘어서 배관 자체가 낡았다고 하시는데, 통수 비용으로 20만 원 넘게 쓰고도 여전히 배관 수리라는 큰 숙제를 안고 있는 기분이다.
앞으로 다시는 커피 가루를 버리지 않기로 했다
결국 돈은 돈대로 나가고, 새벽에 잠도 못 자고, 집안 곳곳에 밴 퀴퀴한 하수구 냄새까지. 이게 다 내가 버린 커피 가루 몇 숟가락 때문인가 싶어 허탈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어떤 사람은 세탁기 배수구 청소도 정기적으로 한다고 하던데, 나는 싱크대 하나도 이렇게 쩔쩔매고 있다. 배관 공사나 우수관 관리 같은 건 사실 우리 같은 일반인이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다. 일단은 며칠 동안은 배수구에 뜨거운 물을 자주 부어주면서 관리를 해보려고 하는데, 이게 효과가 있을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또 막히면 그때는 진짜 큰 공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