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마주한 주방 싱크대의 배신
어제 새벽 한 시쯤이었나, 설거지를 다 끝내고 개운한 마음으로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주방 쪽에서 기분 나쁜 ‘꾸르륵’ 소리가 났다. 처음엔 그냥 가전제품 소음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발 밑이 축축한 기분이 들어 가보니 바닥에 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더라. 30년 넘은 구축 아파트라 평소에도 배관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한밤중에 터질 줄은 몰랐다. 급하게 싱크대 하부장을 열어보니 배수관 연결 부위에서 물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냄새는 또 왜 그렇게 퀴퀴한지. 이 시간대에 관리사무소에 전화하는 것도 민폐인 것 같아 혼자 해결해보겠다고 낑낑대며 고무장갑을 끼고 난리를 쳤다.
다이소 제품부터 뚫어뻥까지 써봤지만
일단 집에 굴러다니던 뚫어뻥을 가져와서 힘껏 펌프질을 했다. 보통 변기가 막히면 이걸로 해결되곤 했으니까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공기만 퍽퍽 소리를 내며 튀어 오를 뿐, 정작 물길은 전혀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예전에 다이소에서 사뒀던 배수관 세정제도 남은 걸 다 들이부었다. 약 5천 원 정도 했던 제품이었는데, 사실 그때도 큰 효과를 본 기억은 없었다. 기름때가 잔뜩 껴있으면 화학 약품만으로는 역부족이라는 걸 알면서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30분 넘게 기다렸다. 그 기다림이 정말 고통이었다. 냄새는 더 심해지고, 거실까지 퍼지는 것 같아 창문을 활짝 열었는데 밤바람이 너무 차가웠다. 그냥 업체를 불렀어야 했나 싶어서 핸드폰으로 급하게 근처 업체를 검색해봤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했던 순간의 망설임
인터넷에 나오는 하수구 뚫음 기계나 석션기 같은 장비들을 보니 내가 가진 도구들은 장난감 수준이라는 게 확 와닿았다. 출장비가 기본 10만 원에서 상태에 따라 20만 원까지 올라간다는 글들을 보며 한참을 망설였다. 당장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지금 이 물바다를 방치하면 바닥 장판 다 뜰 것 같고. 결국 새벽 두 시 반쯤에야 겨우겨우 배관을 분리해서 내부를 확인했다. 세상에, 기름 덩어리가 마치 굳은 버터처럼 배관 입구를 완전히 막고 있었다. 이게 몇 년 동안 쌓인 건지, 아니면 최근에 먹은 삼겹살 기름 때문인지 알 길은 없지만 그 비주얼을 보는 순간 정말 할 말을 잃었다.
낡은 아파트의 배관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결국 손을 다 걷어붙이고 긴 쇠젓가락이랑 못 쓰는 칫솔을 동원해서 긁어내기 시작했다. 30분 정도를 그렇게 쪼그려 앉아 있으니 허리가 끊어질 것 같았다. 긁어낸 기름 덩어리를 키친타월로 닦아내고 봉투에 담는데,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더라. 배관 안쪽이 매끈하지 않고 거칠거칠해서 뭐가 계속 잘 걸리는 구조였다. 구조적인 문제라 내가 긁어낸다고 해결될 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당장 오늘 밤을 넘기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다. 이럴 때마다 왜 이런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나 자괴감이 든다. 남들은 스마트 가전이니 뭐니 하면서 집을 꾸미지만, 사실 근본적인 배관 설비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으니까.
아직 불안함이 가시지 않는 다음날 아침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확인해보니 일단 물은 내려간다. 하지만 완전히 뚫렸다는 느낌보다는 그냥 ‘임시방편’으로 숨통만 틔워놓은 기분이다. 언제 또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지 몰라서 오늘 하루 종일 주방 근처만 가면 신경이 쓰인다. 설거지를 할 때마다 물이 잘 빠지는지 뚫어지게 쳐다보는 내 모습이 참 웃기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진짜 고민하지 말고 전문가를 불러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또 비용 이야기를 들으면 망설여질 것 같다. 이런 사소한 불편함들이 모여서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정을 떨어뜨리는 것 같다. 완벽하게 해결된 건지, 아니면 그냥 내일의 나에게 미뤄둔 문제인지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뚫어뻥으로 잠깐 막았는데, 기름 덩어리 때문에 진짜 멘붕 왔네요. 생각보다 오래된 배관 문제인 것 같아요.